지옥의 생활바카라 제 8장 < 마지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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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구남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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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할매가
마당으로 나오고 있었다.
석이와 나는 급하게 하던 행동을 멈추고,
상황파악에 나섰다.
할매와 우리의 거리는 고작 채 1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석이는 낙담한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하 x발.. 조졌네.. "
그렇다. 우리는 할매한테 딱 들켜버린것이었다.
변소뒤에라도 숨을까 했지만, 그러기엔 늦어버렸다.
우리가, 텃밭을 파던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할매가 집안에서 움직이는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것이었다.
할매는 놀라고 벙찐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봤다.
컴컴한 오밤중, 밤하늘 아래 나와 석이 그리고 할매.
우리 셋은 한동안 얼음이 된냥 굳어 서로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석이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고는 텃밭 옆에 있는 덩치 큰 돌멩이를 집어들고는
냅다 할매를 향해 달려갔다.
퍽- 퍽- 퍽-
석이는 수차례 할매의 머리를 찍어눌렀다.
할매는 픽 하고 힘없이 쓰러졌지만, 그럼에도 석이는 멈추지 않았다.
" 석아! 석아! 석아! "
그제서야 일이 잘못 흘러간다는걸 깨달았다.
나의 뇌는 급작스런 상황에 놀라 사고하기를 멈추다, 다시 재가동한것이었다. 이제야 나는 석이를 말리기위해 달려가
석이를 간신히 제압했다.
석이는 눈물을 흘렸다.
" x발... "
할매는 숨을 멎은듯 했다. 미동조차 없는 상태로 눈을 부릅뜨고
그자리에 쓰러져 우리 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꿈을 꾸는걸까? 지금 이게 뭔 상황일까?
뺨을 세차게 때려봤지만, 나는 잠에서 깨지않았다.
고로 이것은 우리가 마주한 최악중에 최악인 상황이 된것이다.
손 발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고, 가슴이 터질듯 뛰기 시작했다.
겨울이였지만, 등에서는 서늘한 땀줄기가 흘렀다.
" 석아.. 니 지금 뭐한거고..? "
석이는 아무말 없이 돌멩이를 툭 내려다놓고는, 다시 텃밭으로 돌아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 야이십새끼야! 지금 뭐한거냐고! "
석이는 텃밭 안에 든 돈을 쥐어들고는 일어섰다.
" 진수야. 도망칠거면 치라. 나는 이 돈은 챙기야겠다 "
석이는 그깟 지폐 쪼가리 하나에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지폐 쪼가리 돈 하나에, 할매는 비참하게 죽은것이다.
그 지폐 쪼가리 돈 때문에, 우리는 강도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죄책감이 없는 석이의 두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 눈은 도박이라는 탐욕에 씌여져, 짐승과도 다를 바 없는
역겨운 괴물을 만들어냈다. 나는 할말을 잃은 채, 그자리에 서있었다.
어째서, 돈을 포기하고 도망이라도 쳤으면 됐을걸.
어째서, 석이는 돈을 포기하지않고 할매를 죽인것인가.
그것도 한치의 고민도없이,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
석이는 분명 앞전에 버스정류장에서 끝을 보고싶다고 했다.
그 끝을 위해, 석이는 결국 돌이킬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석이는 텃밭을 다 판듯했다. 돈을 가방에 다 챙기고는 천천히 일어나
마당에 있는 마루에 앉았다.
입에 담배를 물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런 석이가 무서웠다.
나는 지금 신고를 해야하는걸까?
그럼 나도 감옥에 가는걸까?
정말 내 삶은 이대로 끝인걸까?
" 니 왜그랬노 석아. "
" 진수야, 내 혼자 벌인일이다.
혼자 감당할테니까, 니는 지금이라도 도망쳐라. "
석이는 고개를 떨구고는 덧붙였다.
" 어차피 난 잃으면 죽을라캤다. 근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 아니가. 마지막 배팅이라도 해야만 했다. "
그렇다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석이는 살인마저도, 그저 자신의 도박 욕구에 못이겨
합리적인 핑곗거리를 찾는듯 했다.
석이의 손과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리고 챙긴 돈에도 피가 잔뜩 묻은듯했다.
우리는 지금 피묻은 돈을 번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석이는 고작 도박에 눈이 멀어 강도 살인을 저질렀다.
도박쟁이들 또한 어쩌면 가족을 죽이고 있지않은가.
우리들은 고작 도박의 욕망과 탐욕에 이끌려
아무런 죄가 없는 가족들을 죽음과 파멸의 길로 이끈다.
매번 가족의 지갑주머니를 강탈하고, 영혼을 죽인다.
하지만 우리의 두눈에는 죄책감은 보이지 않는다.
석이처럼 언제나 탐욕과 욕망에 찌들어
피 묻은 지폐 쪼가리 하나만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나와 석이가 아무리 발버둥치며, 돈을 마련해
바카라를 튕굴지언정. 몇 억을 따게 될지언정.
우리는 결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영혼마저 강탈하고 죽이는
인간들이니까. 욕망앞에 서있는 우리는 이 지옥같은 굴레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 이기면 뭐가 달라지는데 "
석이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 이기면 뭐가 달라지는데, 대답해봐라 "
석이는 헛기침을 하곤 대답했다.
" 진수야, 할매를 죽인건 어쩔수없••• "
" 됐고! x발새끼야! 이기면 뭐가 달라지는지나 대답해보라고! "
석이는 그제야 눈을 꾹 감고 대답했다.
" 이기면.. 이기면.. 이기면 다 할수있다.
이 지옥같은 삶도 이젠 끝나는거겠지. 적어도 사람답게 살아볼 기회는 얻지않겠나. "
석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기면 다할수 있다는 그 말이,
이기면 지옥같은 삶이 끝날거란 확신에 찬 그말이.
너무 역겨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 석아. 우리는 도박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던거같다. "
나는 몇걸음 걸어가 피묻은 짱돌을 집어들었다.
비로소야 나는 도박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겨도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를 따던, 얼마를 잃던. 결국 우리의 영혼은 죽어간다.
우리는 바카라를 멈추지 않는순간. 매 순간 누군가를 죽이고
스스로를 죽이며 지옥같은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것이다.
도박앞에 승부를 본다는 것은 전혀 중요치않았다.
그저 그것을 한다는 행위자체로써 우리는 이미 지고있는것이었다.
느릴지 모르지만 평범하게 살수 있는,
태어나서 느낄 수 있는 수 많은 감정들,
추억들, 경험들, 교훈들. 우리는 그 모든걸 포기하고
그저 욕망과 탐욕앞에 인생의 모든 순간을 바친다.
그 행위를 맛보고 끊지 못하는 순간
결국은 살아있음에도 죽은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짱돌로 석이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제야 석이의 두 눈동자는
탐욕과 욕망의 눈빛이 아닌
죽음앞에 삶을 갈망하는 사슴같은 눈망울로 바뀌었다.
그리고 문뜩 예전 친구녀석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왜 목을 멘것인지. 나는 그저 빚으로 인한 삶이 힘들었기에
죽음을 택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결국 도박은 죽음이 눈 앞에 당도해야
살아있음을 느낄수 있음을. 그 아버지는 알고있었던듯 하다.
끊지 못하고, 참지 못한다면.
결국은 죽음으로 매듭지어야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는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폐 쪼가리는 아무런 의미없는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썩은 동앗줄이 아닌
튼튼한 동앗줄을 잡을 마지막 기회 말이다.
- 마지막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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