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생활바카라 제6장
작성자 정보
- 갈구남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5 조회
- 0 추천
- 목록
본문
지금 와 돌이켜보자면,
그날 나는 왜 대출을 감행했을까
그날 나는 왜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달렸을까
그날 나는 왜 잃을걸 알면서도 절제하지 못했을까
라는 막연한 후회만 밀려올 뿐이다.
바카라로 벌어들인 돈은 밀물처럼 물밀듯 들어왔지만
끝에는 썰물처럼 내가 가진 모든걸 들고 빠져나갔다.
그 날 나는 대출을 감행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감당 못할 빚을 지기 시작했다.
원금회수는 둘째치고, 정화와의 여행이 하루남은 시점까지
나는 그저 하염없이 잃기만했다.
그렇게 정화도 결국은 잃고 말았다.
우리의 5년은, 바카라의 등장으로 1달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어찌보면 나는 바카라와 바람이 난 셈이었다.
- 오빠, 왜 전화를 안받아, 무슨 일 있어?
- 여행 가긴 갈거야? 빨리 답장좀 해봐
- 도대체 밖에서 뭔짓거릴 하고 돌아다니는거야! 회사도 그만두고!
결국 나는 우리의 5주년 당일,
소주 5병을 마시며 기절하듯 잠수를 타고 말았다.
하지만 꿈에서는, 도박을 하다 지는 장면들이
불현듯 지나갔고, 그런 악몽들 때문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기 일쑤였다.
문뜩 어릴적 친구녀석의 아버지가 도박때문에 목을 메고
죽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때 그 아버지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웃긴건, 아직 나는 죽을 용기가 없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고시원으로 온지 1년6개월이 지났다.
땡길 수 있는 대출은 다 땡기고, 대출이자에 허덕이며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갚지도 않는 무능력한 상태다.
지인들에게 한번 술을 마시고 이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들 한결같았다.
" 진수야, 너 정도면 임마. 학벌도 나쁘지않고, 나이도 어린건 아니여도
많은것도 아니잖아. 지금이라도 다시 회사 다니고, 돈 착실히 모으면서
회생이라도 신청해봐 "
말은 쉽다. 정말이지 말은 쉽다.
남 일을 조언하는 것정도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것이다. 내 일이 아니니까.
나 또한, 내 인생은 어찌하지 못하면서
누군가의 인생은 쉽게 조언하고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의욕상실 상태다.
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어렵게 모은 돈을 모두 날리고
빚까지 지고,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당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바람에,
내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아직도 나는 카드패를 보며 일확천금을 꿈꾼다.
이쯤되면 내가 돈을 따고싶은 것인지,
승리하셨습니다 라는 문구를보며 도파민을 느끼고 싶은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요즘들어서는, 더 이상 돈 나올 구멍이 없어
오후4시가 되면 쿠팡 셔틀버스를 타러 나간다.
그리고 야간까지 일을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돈이 입금되면
다시 플레이어와 뱅커에 올인.
월급을 기다리는 일 조차 이젠 하지 못할것이다.
하루하루 내게 자극이 필요했다.
현실을 도피할 자극이 없다면, 나는 아마-
고시원에서 주는 라면과 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소주를 마실 돈만 남겨놓고 잠에든다.
석이와는 소식이 두절된지 6개월쯤 된거같다.
그러던 어느날 , 익숙한 번호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 어, 진수가? 진수 니 맞제? "
석이 녀석이었다.
나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래 내다. "
우리는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이런 도박을 알려준 석이가 미웠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파멸의 길로 이끈것도 나 자신이였다.
내 선택을 원망해야지, 석이를 원망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 진수야, 니 소식 들었다. 요새 힘들다매 "
나는 답하지 않았다. 굳이 앓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 오늘 시간되나? 우리 저번에 만났던 고기집알제,
술이나 한잔하게 나온나 "
나는 가볍게 옷을 차려입었다.
거울을 보자, 덥수룩한 머리에 거뭇한 수염자국때문인지
행색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면도칼로
수염을 대충 밀곤 석이를 만날 채비를 마쳤다.
.
.
.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고기집 앞에
석이가 와 있었다. 행색은 그리 좋지 못해보였다.
겨울이 찾아왔지만, 석이는 후줄근한 얆은 츄리닝바지에
따뜻해보이지 않는 싸구려 패딩을 입고있었다.
" 어 진수야! 오랜만이다 "
" 니 안춥나. 추운데 뜨시게 좀 입고 나오지 "
석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억지스런 미소를 지었다.
" 춥긴 뭐가춥노. 내 해병대 나온거 벌써 잊었나 "
우리는 고기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소주 두병과, 새우깡, 오징어를 집어들고 야외에 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석이의 삼각별 엠블럼이 박힌 벤츠 차키는 오늘 보이지 않았다.
" 진수야, 니 빚 많이 졌다매 "
석이는 내 근황을 잘 알고있는 듯 했다.
아마 그동안 미안해서 선뜻 만나자 못한거겠지.
" 그래. 니 덕이다 임마. 카드깡에 햇살론에, 애들한테 돈도 빌리고
할 수 있는건 다해봤다. "
" 그래서 얼마정도 빚졌는데 "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금액의 단위가 커지다보니
빚에 관해선 잊고싶어 평상시에는 기억조차 잘 하지 않았다.
만약 계속 빚 단위에 대해 되뇌였다면,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것이다.
" 모르겠다. 1억 안되겠나, 생각하기도 싫다. 닌 요새 뭐하고 지냈는데 "
석이는 고개를 떨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행색을 대충 보자니, 아마 나와 비슷한 상황이겠거니 했다.
" 나도 마찬가지다. 2억말아먹고, 빚도 니랑 비슷하게 진거같다.
뭣도 몰라서 니한테 이런거 알려주고, 내가 미안하다 "
석이는 눈물을 흘렸다.
입술을 앙다물고는,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은 광대를 타고 내려와 턱끝에 미쳐, 소주잔을 향해
툭 떨어졌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어느샌가 나 또한 함께 울고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울며 소주를 연거푸 들이마셨다.
어느정도 서로 취기가 돌때 쯤 석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진수야, 니 그때 생각나나 "
" 뭐 어떤거 "
" 우리, 고딩때 했던 말 기억 안나나 "
나는 잠시 우리의 과거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
교복을 입고, 하교 후 인적이 뜸한
강가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세상이 우리의 편이리라 생각했던 시절.
" 성공을 거두기 위하여 "
석이가 도중에 말을 끊고 답했다.
" 필요한 것은 "
.
.
.
" 계산된 모험이다. "
우리는 마지막 막을 함께 말했다.
그래, 그땐 그런 좋은 시절이 있었지.
함께 성공하자 올라온 서울이었다.
구미촌놈 두명이 서울로 올라와
지금은 지갑에 5만원도 없어
편의점에서 노상이나 까고 있다니.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석이녀석이 앞에 앉아있자니
조금이나마 힘이났다.
석이는 잠시 고개를 푹 떨구더니, 생각에 잠긴듯 했다.
그러고는 얼굴을 치켜세우곤,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 진수야. 니도 알겠지만 니나 내나 이제 돈 나올 구멍도 없다 아니가 "
" 그렇지 근데 왜 "
석이는 잠깐 고민하는듯 하다 말을 이었다.
" 이대로 쭉 살다가는, 우리 장가도 못가고, 평생 빚에 허덕이다가
오히려 빚만 더지고 X같이 살다 죽는거다. 뭔말인지 알제 "
나도 동감하는 바다.
자산이 있으면 자산이 늘듯이
빚이 있으면 빚만 더 늘어날 뿐이다.
" 그러면, 내한테 묘책이 하나 있긴한데.. "
석이는 또 다시 말을 멈추었다.
내 표정을 살피는듯 했다.
" 구미에, 내 아는 할매집이 하나있다.
우리 친할매는 아니고, 좀 거리있는 이웃집인데
그 집 할매가 웃긴게 은행은 못믿겠다고 현금을
집에 쌓아둔다 카더라. 할매 자식들은 다 출가하고
혼자사는데 노망나기 일보 직전이라 카대.
듣기로는 귀가 어두워서 말소리도 제대로 못듣는다카드라 "
나는 석의의 계획을 알아챘다.
귀가 어둡고 노망나기 직전의 할매.
돈은 집안 곳곳에 쌓아두고, 자식들이 찾지 않는 그런 할매.
시골동네다보니, 인적또한 드물고, cctv 또한 없다.
" 그래서 뭐 훔치자는거가 니말은 "
석이는 또 한번 억지스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뭐, 따지고 보면 훔치는건 아이다.
그걸로 마지막 배팅 크게 한번하고, 먹고나서 돌려주면 된다아니가.
니나 내나 지금 뭐 별다른수가 있나. 평생 이래살다 죽을래 "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왔다.
마지막 배팅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마지막배팅이라는 명목하에 그 수많은 배팅을 했지만
지금 우리 꼴이 어떤가. 수중에 5만원도 없어
이 추운 겨울에 편의점에서 소주병을 따고 있지 않은가.
석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진수야. 진짜로 우리 지금 밑바닥이다.
어차피 밑바닥인거 올라갈 기회는 잡아야 할거 아니가.
모험 한번 해보자. 나는 니가 안한다카면 다음주에 내 혼자라도
할거니까 그래알아라. 생각있으면 전화주고 "
석이는 그렇게 유유히 떠났다.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와, 소주 한병을 또 다시 깠다.
누런 장판벽지. 숨 쉬기도 힘든 좁디 좁은 방안.
창문 조차 없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도 안되고
옆방에선 할배의 기침소리가 울려퍼진다.
소주를 따르고 마시자,
바닥에 바퀴벌레 한마리가 기어가는 것이 보인다.
아둥바둥 열심히 기어간다.
바퀴벌레는 나를 의식하지 않고,
벽지를 타고 벽을 오른다. 위를 향해.
아마 책상위에 널부러진 과자 부스레기를 향해.
바퀴벌레는 언제든 내 손에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바퀴벌레는 모험을 한다.
죽거나 살거나. 그저 먹이를 향해 달린다.
나는 바퀴벌레를 내버려둔다.
그리고 휴대폰을 켜,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온 톡 한통을 읽는다.
[ 아들, 엄마가 요즘 몸이 아파 식당일을 못해서 힘들어서 그러는데
생활비가•••• ]
.
.
.
취기를 빌린 나는 석이에게 통화를 건다.
" 그래 석아. 언제 출발하면되노 "
- 7장에서 계속 -
관련자료
-
이전
-
다음